대전 둔산동, 중앙로에 삼성생명보험빌딩에 대전정부업체 입주
IMF 이후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기업들의 자산구조가 주식시장이나 방송,매체에 발표되어야
내가 느끼는 한국? 어려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았고 그랬다.지금은 정말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곳이구나 절실히 느낀다.
지난 달에 당근을 보고 찾아 간곳이 삼성생명보험이었다. 구인 글로 봐서는 보험인지 몰랐다. 가서보니 보험영업이었고 기업재무컨설턴트과정이었다. 면접을 거쳐 입과는 해서보니 손해보험과 생명보험이 있고 이제는 제3보험도 있다는 것이다.
교육을 위해 참석한 사람들에게 멀리에서 자동차을 타고 온 사람들에게는 하이패스가 지급되고 주차권도 지급된다고 했다. 내가 물어보았다. 혹시 대전시내에서 온 사람들에게 교통비가 지급되냐고 말이다.
첫날 교육에서 보니 포도나 오렌지음료도 가져다두고 커피와 도너츠와 같은 디저트, 인스턴트 커피도 준비되고 월드콘까지 준비가 되어 있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인터넷검색을 하고 글을 쓰다보니 갑자기 오전부터 나가서 삼성빌딩 20층인가에 교육장에 앉아 있으려니 자꾸 눈이 감겼다.더구나 포도음료가 진했는지 얼음을 타서 마셨는데도 눈이 감겼다.
입과교육생으로 등록하는데 나는 충청팀에 입과을 했는데 강사가 준것은 대구의 서대구지점인가 등록번호을 주며 적으라고 해서 대전충청지점이라고 이야기을 했다. 등록번호을 ....
교육을 처음받을때 이야기했다. 나에게는 정장이 별로 없다고 ...누가 나에게 옷을 잘 차려입으라고 도와 줄 사람도 없었지만 말이다. 나이도 있고 ..
교육이 끝날 무렵에 교육비도 안나왔다. 삼성생명이 30년 전에 친구가 다녔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가서 일자리을 알아보면서 말이다. 그 친구이야기로는 그당시에 일비가 만원이라고 했다. 보험업계가 그때는 인식이 안좋았다. 그떼 대학생 졸업생 대상으로 레이디인가 뭔가 해서 뽑아 교육을 하면서 일비가 만원이라는 것이다.
20여년전에 대전에 SK생명보험에 가니 교육아침에 교육을 받으면 매일 오천원씩 주어서 참 신기했다. 그리고 점심도 매일 돌아가면서 다른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집에서 식사을 하다가 가니 매일 다른 식당에서 다른 메뉴의 음식을 먹으니 얼마나 맛이 있겠는가? 그떼 이곳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대전오류도에 음식특화거리가 되었다.
대전 기독교연합봉사회관에 독립영화관에 일이 있어 갔다가 오류동에 할리 커피숍에서 엘지텔레콤의 회원으로 무료커피을 마시고 그 음식특화거리을 가보니 옛날 음식점은 별로 없었다. 백반음식점도 말이다. 어느 식당에서 먹었는지 그때 당시에 오래간만에 소시지계란부침을 먹는데 추억의 맛에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난 그 5천원으로 집에 가서 반찬거리을 사서 조카들과 부모님과 식사을 차려먹었다. 그때 세조카가 집에 있었다. 이젠 독립해서 인사도 없다.
그때 생명보험시험을 준비하는데 사랑니가 아프기 시작을 했다.너무 아팟지만 참고서 시험을 보고 생명보험시험을 본 연후에 오류동에 어느 치과에 가서 이빨을 뺐었다. SK생명보험에서는 삼품교육을 하면서 몇명을써서 내라고 하니 인터넷광고을 보고 간 나는 그 광고로 리쿠르팅한 선배영업직원은 자신이 가지고있던 고객이름을 주면서 쓰라고 해서 제출을 했다.
그때 교육을 받으면서 그 뒤에 있던 컴퓨터로 국제기구와 국제 농업개발기구에서 아시아 개발은행을 검색햇다. 그당시에는 세조카들을 데리고 그애들이학교을 안가는 일요일이면 세명을 데리고 세이백화점에 가서 놀았다. 영화관 입구 화장실 쪽 가는 긴 회랑에는 컴퓨터들이 길게 설치가 되어 있었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고 끝에서는 조카들이 큰 텔레비젼 앞의 소파에 앉아서 영화을 보는 동안 나는 이 컴퓨터로 검색을 했었다. 그당시에 일반 피시방에서는 한시간에 천원이었다. 작은 돈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나는 매일 한시간씩 동네 피시방에 밤에 가거나 아침에 가서 포럼이나 각종 국제기구나 CNN이나 BBC등 을 검색했었다.
그리고 조카들에게 세이백화점 2층에 있던 맥도널드에 가서 조카들에게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나에게는 그 당시에 햄버거을 사줄 돈이 없었다. 지금도 가끔씩은 딸에게 햄버거을 사주며 그때 생각을 한다.그리고 어쩔때는 곧바로 집으로 오거나 아니면 세이백화점 옆에 서대전공원에가서 조카들을 뛰어 놀게 했었다.
아버지가 고혈압이 계셔서 일요일에 집에서 애들이 떠들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셔서 애들을 데리고 한밭도서관이나 세이백화점을 데리고 갔었다. 그때 sk생명 보험교육기간에 받은 일비 오천원은 정말 유용하게 썼다.
그런데 지난 4월에 입과햇던 GA기업재무컨설턴트교육과정은 일비가 없이 교통비가 아닌 하이패스나 주차권이 지급되었다. 점심은 도시락이 지급이 되었다. 대전충청지점에 대표에게 대전권에 교통비지급에 대해서 물어보니 나오지 말란다. 그래서 교육을 못받게 되고 4월 10일경에 있다는시험도 용인에 교육시설에 일박이일도 못가게 되었다.
대전 태평동에서 정부청사까지 걸어가는 것은 무리다. 더구나 나는 지금 다리가 아프다. 일월에 무릅이 아프기 시작해서 2월에 병원에 가니 퇴행성 관절염이 왔다고 하루에 한시간이상은 걷지 말라고 햇는데 자꾸만 일이 터져서 안돌아다닐수가 없다. 돈이 있으면 택시을 타고 버스도 타는데 요새는 시내버스에 올라서 카드을 달라고 한다. 버스에는 녹색종이카드가 있는데 은행계좌 번호가 적혀 있다. 처은에는 은행에 계좌 이체을 햇다. 은행에 계좌이체을 하다보니 이런 메시지가 뜬다. 6개월간이나 1년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계좌라고 말이다. 택시도 마찬가지다.
지난주에 대전이슬람센터에 홍보자료을 가져다 주다가 삼성생명 기업재무컨설턴트 홍보전단지을 건네 줄까 하다가 그냥 가져왔다. 요즘도 삼성생명에서 일비로 만원주냐고 물었더라면 큰 일 날뻔 햇다. 다른 보험 모집에 가니 보험인지 모르고 갔다. 한 곳데서는 교육에 참여만해도 sk 오일 주유오만원권을 주고 다른 보험회사에서는 현금 삼만원이 지급이 되었다.
그런데 삼성생명에서는 아무것도 지급도 안되고 하이패스나 주차권도 아닌 대전에 버스교통비 지급이 안되냐고 물었다고 교육에 과정에 나오지 말라니 정말 너무하다. 그리고 기업재무컨설턴트이야기을 하면서 기업에 사장님들이 이과정을 듣고 보험을 들고 고액을 수수료을 챙기었다고 하면 일반 사람들이나 보험영업인들을 모독하는 것이 아닌가. 그전에 이건물에 삼성샘명 면접을 보는데 지점장이 이런 이야기을 했다. 자신은 한달에 보험금이 백오십만원정도을 넣고 있다고 말이다. 아마 보험 영업을 하시다가 보험이 안되면 자신이 보험을 든것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대전 신협 옆에 세워진 삼성생명빌딩에 그전처럼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가 않았다. 대전에 중앙로에 삼성생명빌딩 건물에는 대전일자리 센타등 대전의 정부기관이 들어섰다. 대전시청에서 다른 여기자와 이야기 끝에 대덕대학에 근처에 중소기업청등 관련 협회을 방문했던 이야기을 하며 일반시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게 대전 유성구에 인적이 드문 곳이 아니라 사람이 많은 곳에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열변을 토한 적이 있었다.
삼성생명이 흔들리고 있는것은 아닌지? 대전에 보니 손해보험도 이제는 텔레마케팅등으로 영업을 하면서 여자들이 대거 포진했다. 그전에 20여년 전에는 손해보험이나 화재 보험이나 대부분 남자들이 하는 곳이었다.
아무튼 삼성생명에 기업재무컨설턴트 교육은 받지을 못했다. 하루나가고 버스교통비가 없어서 말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몸이 안좋고 일이 안풀리면서 카드값이 연체가 되면서 자꾸만 일자리 찾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요새는 일자리에 면접을 보면서 무엇인가 더 물어보니 자기들과는 코드가 마지 않는다는 둥 나오지 말라고 한다. 예전에는 안그랬다. 딸은 밥을 먹거나 시켜서 먹을려고 하는데 나자신은 대전버스도 없어서 일자리을 구하기도 힘들다.
지지난주에는 태평동과 가까운 지하철 용문역근처에 리본상조에 한 사일을 출근했는데 나중에 교육과 웨딩플래너 교육을 앞두고 당근을 통해서 나을 리큐리팅한 사람 얼굴도 못보다가 사흘째 되던 날 교육을 받고 왔더니 그날 얼굴을 처음보고 이야기을 하는데 내가 교육분야와 웨딩플래너에 관심이 있다고 햇더니 그파트는 젊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나오지 말란다.
오후에는 한시간 알바을 위해서 교통비도 아끼느라 태평동에서 탄방동 전자타운까지 걸어서 왔다 갔다 햇다 . 그마저도 일주일 나가니 더 이상나오지 말란다. 올 해 어린이 날이나 어버이 날에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
아니 탄방동에 쌍용플래티넘에서 하루네시간 알바 자리에 가기로 해서 갔다가 설명회참석하고 2만원을 받았다. 설명회에 참석을 하니 팀장이 주민증을 보내라고 했다. 그래서 보냇다.설명회에서 주민증을 보낸 사람은 직원이라고 햇다. 그런데 그날 만난 팀장은 그전에 나을 면접본 팀장과 는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5월초에 면접본 팀장은 카트머리에 검정원피스을 했는데 그날 본 팀장은 단발머리였다. 내가 만난 팀장이 아닌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주민증을 보내면 직원이 아니냐고 했더니 알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면접을 볼때는 오전에 두시간, 오후에 두시간 전화로 티엠을 하고 점심제공에 그 나머지 시간은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고 오전출근시간과 저녁퇴근시간은 꼭 체크해달라고 했다.그리고 전화상담하는 것은 하루에 만원 하루에 사만원치고 점심도 제공에 인센티브는 10%라고 했다. 자세한 사항은 오전마다 교육을 한다고 이야기을 했다.
이 팀장이 어딘가 달라서 내가 만난 사람이 아니라고 했더니 나오지 말란다. 그래서 내가 여권과 주민증을 여러번 잊어버려서 그려서 이해 해 달라고 큰소리을 이야기 하고서 나왔다. 설명회에서 도착해서 기다리는데 목이 말라서 팀장에게 전화을 하니 사무실안으로 들어오란다. 어디냐고했더니 그전에 들어오지 않았냐고..면접당시에 내가 사무실을 들어간 것이 아니라 직접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어딘가 눈에 익었다. KCC에테르스웨첸에 고실장 같기도 하고 먼 기억을 더듬으니 성보건설의 썅떼분양하던 그여자같다. 인시행사였는데 시행업체에서 자기들을 알아준다고 하고 그때 티오가 한명있어서 나을 뽑는다고 햇다. 그때 사무실에 하얀정장을 하고 고자세로 있던 여자가 있었다. 하얀 밴을 타고 다닌다고 했고 내가 나간지 얼마 안되어 볼일이 있다고 2박3일 출장간다고 하더니 한 동안 안나왔었다. 그인시행사는 아침에 가면 직원들에게 샌드위치을 돌리고 하루 일비가 만원씩 나와서 그돈을 모아서 부산에 애 아빠을 만나러 가고 동네시장에서 내복을 사다가 애 할머니에게 드렸더니 내복이 필요 없다고 하고 그 내복도 입지 않았던 생각에 기분이 안좋았다. 면접을 보고 왔는데 부산에서 죽은 애아빠어머니가 전화을 하는데 기분이 굉장히 상해 있었다.
내 남동생의 와이프도 중촌도에 아파트에 살때 보니 겨울에 입지 않고 살았다. 우리는 그때 우리부모님과 태평동에 살면서 겨울에 내복을 입고 보일러도 잠깐잠깐 때고 사는데 내가 부탄을 다녀와서 나을 초대을 안해서 어머니에게 이야기하고주소을 물어서 걸어서 그 아파트에 갔다가 걸어서 집에 왔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태평동에서 중촌동까지 가는 시내버스가 없었다. 그때 조카들을 데리려 오는 어린올캐도 택시을 타고 왔다 갔다 했다.
아파트에 가니 보일러가 잘되어서 인지 올캐는 끈 매리어스같은 옷을 한겨울에 아파트에서 입고 있었다. 나는 내복에 코트까지 입고 갔었다. 막내동생은 내가 한국에 왔다고 하니까 몇번 왔다갔다 하다고 여동생이 서울에서 내려오고 하니 자기집으로 가자고 해서 용두집에 방한칸 살림집에 갔었다. 애도 없고 어린올캐도 없었다. 아무튼 집구경을 시켜주었고 그주위에 중국인들이 많이 산다고 이야기을 했었다. 애 엄마을 위해서 운동하라고 러닝머신을 방한칸에 마련해두고 한칸은 침실이고 거실겸 부엌에 그 머신이 있었다.
부산에 아파트는 겨울에 춥다. 내가 갔을때가 그래서 인가 그렇게 춥다고는 말할 수없겠지만 하루에 네번 보일러가 들어오는데 집에 있으려면 그렇다는 것이다. 아침에 6시인가 그리고 오후2시 .오후6시, 저녁 11시인가.....
애가와 집에 하루종일 있다보면 약간은 서늘해서 애기가 감기가 든다. 내가 부산에 모라아파트에 있을때는 작은방에 전기장판이 고장이 난 채로 일년이상 방치가 되어 있어서 대전에 와서 중고물품점에서 전기장판을 사다가 놓았었다.
아무튼 그때 생각이 나서 부산에서 전화가 오는데 받지 않았다. 부산에서 애기을 낳고 대전에 한달간 있다가 창호가 자동차을 끌고 올라와서 부산으로 가자고 해서 내려갔다. 그런데 산모인 나는 애기을 보면서 생라면을 부셔서 먹었다. 애아빠말로는 애 할머니가 곰탕을 끓여준다고 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 303호아줌마가 나에게 하는 소리가 서울에서 여자가 내려와서 한참을 있다가 갔다고 했다.
부산에서 애기을 낳기위해 병원에 있으면서 그래도 애 할머니에게 전화을 해야 할 것 같아 전화을 했더니 그 직원은 나보고 대구여자요 대전여자요 했었다.나을 만났을? 창호는 이야기 했었다. 대구에 자기보다 여섯살어리고 영문과을 나와서 학원선생을 하는 여자을 만났었다고 ,월급을 백만원 받는다고 ...그여자 어머니는 대구에서 식당을 하고 그여자가 사는 아파트을 갔는데 남동생과 둘이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한참지나고 나서 마트에서 그여자와 어머니을 만났다고 이야기을 하고 어느날 밤늦게 찾아와서 백만원을 빌려갔었다고말이다.
대전 중앙로에 아직도 그 성보건설에 건물은 짓다 만채로 남아 있다. 그당시에 건설계획에 의하면 중앙로 좌측쪽은 상당히 건물이 올라가 있었어야 한다.
오늘은 기분이 좀 꿀꿀하다.
#기업재무컨설턴트#주식시장#공적자금#기업자산구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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